윤리의 탈을 벗은. 삶의 진실한 모습!


인간의 삶은 도덕의 감별(鑑別)장치를 통과하면서 아름다운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뉜다.

아름다운 삶은 욕망을 거세당한 ‘선의 꽃’이며

부정한 삶은 욕망의 침전물이 남아 있는 ‘악의 꽃’이다.

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땅에 뿌리를 박고 흙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아름다움과 더러움은 하나의 뿌리에서 자란 두 개의 가지이다.


이 책을 펼치는 독자들은 지금까지 윤리와 이데올로기의 견고한 껍질 속에 싸여 질식되었던.

지독할 만큼 생생한 삶의 진실과 만나게 될 것이다.

사찰에서는 청정암 뒤편의 거대한 바위 벼랑을 깎아 석불(石佛)을 모시는 불사를 벌인다. 이 중임이 석수장이 양철수의 어깨에 떨어진다.

한편 일간지 기자가 된 주인공 양석주(애명 돌술)는 아버지한테 인사차 시골로 내려갔다가 이 느닷없는 소식을 접하고 경악한다. 신성한 불상 조각이 과연 불륜으로 얼룩진 아버지의 손에서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의심부터 앞선다. 아버지는 주변 여자들은 물론이고 의붓딸 돌순이마저 겁탈한 사람이다. 더러움이 신성함을 창조할 수 있다는 괴변을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석주는 엄마가 대준 돈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라는 직업까지 얻게 되지만 아버지처럼 엄마도 싫어한다. 엄마는 아버지와 이혼하고 부자 영감 백만금에게 후실로 들어갔지만 성불구자인 그에게서 성적 만족을 얻지 못하자 전 남편 양철수와 암암리에 왕래하며 적치된 성욕을 해결한다. 양석주는 성욕과 돈 두 가지를 모두 얻으려고 하는 엄마의 탐욕이 싫은 것이다.

석주는 입사 후 결벽증이 심한 이지혜를 알게 되고 우여곡절을 거친 뒤 서로 사랑하게 된다. 지혜는 우연한 기회에 석주와 안면이 있는 음식점 배달 아가씨 향미가 자신의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석주가 두 자매의 갈등을 해소하고 화해시키려 하자 한국을 떠나 지혜는 해외특파기자로 나간다. 언니가 몸을 파는 불결한 여자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녀는 젊어서 과부가 되어 여러 남자들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이유로 엄마와도 발길을 끊은 지가 오래 되었었다.

석주를 잊을 수 없어 결국 귀국을 택한 그녀는 향미와 석주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고는 언니에게 석주를 돌려줄 것을 간청한다. 위협도 해보고 애걸도 해보지만 향미는 끝끝내 허락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동생에게라면 어떤 것이라도 양보했던 향미였다.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지혜는 복수를 결심한다.

한편 양철수는 석불 조각을 하는 사이 공양주와 불공드리러 온 홍주를 겁탈하면서도 불사를 차질 없이 완성시킨다.

어느 날. 시골로 내려가 살림까지 차린 석주와 향미가 산비탈에서 대낮에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목격한 지혜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언니를 유인하여 석불 위의 벼랑으로 올라간다. 향미의 양심을 자극해 그녀 스스로 죄책감에 떠밀려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게 한다. 그러나 다행히도 언니는 석불의 어깨 위로 떨어져 목숨은 부지하지만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그러고 나서야 지혜는 석주가 암 말기이고 살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언니가 몸을 팔게 된 계기도 자신의 미국 유학자금을 대기 위해 할 수 없이 택한 길이었다는 것을 알고 뉘우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돌이킬 수 없었다. 향미가 석주를 사랑한다고 말한 것도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석주의 죽음으로 인해 동생이 불행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결국 석주는 죽고. 언니는 식물인간이 되고. 지혜 혼자만 남게 된다.

불륜을 일삼던 양철수의 손에서 탄생한 석불을 찾아 사람들이 강물처럼 모여든다.

“석불이 영험해서 사람을 어깨로 받아 구해주었대!”

“교통사고로 조카를 죽인 아가씨가 조카의 환생을 빌었더니 부처님께서 어린애를 내려주셨다잖아!”

“성불구자 남편과 사는 아줌마도 여기 와서 부처님한테 빌고 득남했다면서?”

환생한 조카애는 양철수가 비 오는 날 석불이 빤히 내려다보는 앞에서 박아 넣은 씨앗이고. 성불구자 남편과 사는 아줌마는 양철수의 전실 김영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거니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양철수가 석불을 조각하며 부처님 앞에서 그 짓을 했고. 석불의 옷자락에 오줌을 싸 갈긴 사실은 오로지 암자승인 혜공스님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이 산 위에 널려 있는 저 돌들을 하찮게 보지 마십시오. 다듬으면 다 부처님이 됩니다.”

석주의 장례식이 끝나고 산을 내려오면서 지나가는 소리처럼 던진 혜공스님의 말은 지혜의 가슴에 깊이 아로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