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의 유교윤리와 근대 지식의 결합

 

1909년에 간행된 『초목필지』는 학교에서 수학하지 못한 무학자들에게 문자 생활에 어려움이 없도록 해독하기 쉽게 편찬된 독학용 연수 국어교과서의 성격을 띠는 문헌이다. 해제의 입장에서 『초목필지』의 서지, 본문 내용의 구성, 교재의 역사적 성격 등을 중심으로 기술하고자 한다.

저자는 정윤수(鄭崙秀), 교열자는 남궁억(南宮檍), 발행인은 안태영(安泰瑩)으로 문헌 맨 뒤 판권에 명시돼 있다. 체재와 판형은 양지 양장본으로 상하 전1책으로 돼 있고, 국형 총 142쪽에 달한다. 『초목필지』상권은 63장, 하권은 66장으로 구성돼 있다. 판권에 내부 검열을 거친 것을 보면 정규 국어 독본 혹은 교과서의 성격이라기보다는 학습자 대상이 다소 광범위한 일반 출판물로 이해할 수 있다. 『초목필지』는 “땔나무를 장만하는 일과 가축을 먹이는 일”의 『초목』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필지’의 뜻을 한데 아우르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교육 내용으로 제시된 정보량이 전체적으로 많다는 점에서 학습자를 10대만으로 한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교재로 판단할 수 있다. 『초목필지』의 문장은 국한문혼용체의 성격을 띤다. 따라서 이 교과서로 학습하는 사람들이 배우고 익힐 필요가 있는 한자는 그 한자의 독음과 함께 본문에 노출하고 있다. 또한 각 장의 본문이 끝나면 본문에 노출된 한자들의 뜻과 음을 친절하게 제시해 놓음으로써 한자 학습서의 기능도 함께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순히 국어교과서의 성격만을 띠는 것이 아니라 교양 및 한자 학습을 위한 교재의 성격도 겸비한 텍스트로 이해된다. 『초목필지』의 상권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제1장부터 제63장까지 구성된 상권 중 제47장까지는 기본적으로 전근대의 유교 중심 생활 윤리가 내용의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제6장 국민의무, 제7장 애국지성, 제18장 외인교제지도, 제19~20장 애종족지도, 제21~22장 애동포지의의 내용은 근대를 지향하는 구성원이 지녀야 할 태도와 자세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즉 ‘국민’의 의무, 나라를 사랑하는 일, 외국인을 대하는 일, 민족을 사랑하는 일, 사해동포의 관점에서 같은 동포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람을 사랑하는 일 등에 대한 서술이다.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국민’의 지위를 부여 받은 각 개인에게 필요한 덕목을 교과서에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민족, 국가, 외국, 인류에 대한 근대적 인식과 수용 태도가 드러난다. 또한 제48장 ‘농업’부터 제55장 ‘실업’에 이르기까지는 전통적인 업종뿐만이 아니라 근대의 실용 업종을 각 장에 나열하면서 실용 생활 윤리에 대한 진술이 함께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제56장 ‘총론초목’부터 제63장 상권 마지막까지는 ‘초목’에 종사하는 이들, 특히 아이들에게 그 스승으로 삼을 만한 조선 및 중국 인물의 일화를 소개함으로써 ‘초목’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전범(典範)으로 기억해야 할 내용을 교과서 본문으로 구성하고 있다. 결국 상권과 하권의 내용을 살펴보았을 때 『초목필지』는 크게 전근대의 유교 중심 생활 윤리와 근대의 실용 생활 윤리, 근대 국가의 구성, 형법, 세계지지가 함께 망라된 교양 학습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독학용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교과서의 체제 구성과 연관 지어 볼 때 한자 어휘 분류집의 성격도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전근대와 근대의 혼합형 교재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 초기 ‘국어’ 교과서의 모습은 ‘조선어’ 교과서의 실체만이 아니라 동양적 인문 양식이 반영된, 문화적 과도기의 응축물의 성격도 함께 띠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