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교육의 필요성과 남녀평등

『초등여학독본(初等女學讀本)』(1908)은 이원긍이 쓰고 변영중이 발행한 1권 1책의 초등여학교 1학년용 한문 교육 책자이다. 많은 부분의 내용을 조선조 사대부가의 부녀자 교재였던 『여계(女戒)』, 『내훈(內訓)』, 『가훈(家訓)』 등에서 요약 압축하였다. 명륜(明倫)・입교(立敎)・여행(女行)・전심(專心)・사부모(事父母)・사부(事夫)・사구고(事舅姑)・화자매(和姉妹) 전 8장 51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에 묶인 여러 과들은 본문을 포괄하는 제목 아래 비슷한 내용을 반복 학습하도록 되어 있어 내용 습득에 효과적이다. 주제와 내용의 연계성을 고려한 편제는 대단원을 설정하고 그 아래 소단원을 둔 현재의 교과서 구성처럼 체계적이다. 전권에 걸쳐 한문 문장을 세로로 쓰고 현토하였으며, 좌측에 역시 세로쓰기의 순 국문 번역을 병기해 놓았다. 한문으로 된 원문을 앞에 제시하고 본문에 대한 국문 해석을 달아 놓은 형식은 한문과 국문의 동시 교차 학습에 도움을 준다. 한문을 통해 국문을 배우거나 국문을 통해 한문을 배우는 상호 보완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다. 암송과 암기에 용이한 국문 현토는 그 특성상 한자와 한문을 외워야 하는 한문교재 내용 습득에 적합하다. 이 책이 국문학습이라는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한편 전통 교재와 신식 교재의 장단점까지 고려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국문 해석문은 쉼표로 구두점을 표기하여 사실상 띄어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현재의 띄어쓰기 방식과도 거의 흡사한 쉼표와 구두점 표기는 내용을 확실히 전달하는 데 기여한다. 『초등여학독본』은 여성교육의 필요성과 남녀평등, 지・덕・체의 강조라는 당시 교육 교재의 특징을 전형적으로 담고 있다. 여성이 덕을 길러 가정의 화목을 도모하고 바르게 자녀를 양육해 재원을 배출하는 것이 국가 부강의 토대라고 인식한 것이다. 『초등여학독본』은 여성이 결혼한 후에 겪게 되는 인간관계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법에도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가정 내 여성의 역할이 남성의 역할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적절한 역할 수행 여부에 따라 가정이 화목해지는 한편 국가의 초석도 마련된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남편, 시부모,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에서 현명하게 대처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가정을 화목하고 튼튼하게 가꿔나가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선진적인 여성의식을 가정에서 실천하는 방법에서는 결국 유순과 순종, 곡종 등 전통적인 행위규범을 따르는 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즉, 『여계』・『내훈』・『가훈』등에서 수신가치를 골라 인용하거나 요약 제시하는 데 머물러 봉건사회의 부덕(婦德)으로 회귀하고 있다. 구체적 행위의 기준으로 삼강오륜, 겸손, 공경 등 유교적인 여도(女道) 사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다. 남녀동권을 이야기하며 ‘남편에 전적으로 의뢰하지 않고 스스로 처신할 수 있는 지식과 덕망을 가져야 하며 남편과 서로 구원해주는’ 관계를 만들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덕(女德) 담론을 계속 견지하며 ‘남편에게 절대 복종하라’, ‘시부모가 틀린 것을 옳다고 해도 순종하라’고 강조한 것은 여성 교육과 평등이라는 근대적 기치를 부르짖으면서도 봉건적 규범을 최고 덕목으로 인정한 가치 혼란 때문일 것이다. 편찬의도와 본문 내용의 불일치가 증명하는 바 이 책은 전통사회의 가치관과 새로운 서양적 가치관이 급속히 충돌하던 개화기 사회의 갈등과 모순을 다시 한 번 증명한다. 『초등여학독본』은 신구 가치관의 혼재와 윤리 기준의 혼란 속에서 점차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던 개화기 신교육 운동의 일면을 드러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