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국어’교과서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

 

   『국민소학독본』은 갑오개혁 이후 ‘학부(學部)’에서 편찬・간행한 신교육용 교과서이다. 1895년 음력 7월에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관찬(官撰) 교과서로, 오늘날의 국정 교과서에 해당한다. 제1과 「대조선국」에서 제41과 「성길사한 2」에 이르기까지 모두 41과로 편성되어, 우리의 역사와 인물, 근대 생활과 지식, 서양 도시와 역사와 위인 등을 다루고 있다. 서양 문명의 수용과 침략적인 외세의 진출로 인해 복잡한 양상을 띠었던 당대 현실을 타개하려는 민족적 의지와 자주독립, 주권 수호의 시대적 사명감 등이 강하게 투사되어 있다.

『국민소학독본』의 문장은 국한혼용체로 되어 있으나 아직은 근대적 문장 관념이 정립되지 않은 듯 비문이 많고 오자 또한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단원의 구성이나 내용은 ‘국민소학’이라는 표제와는 달리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것이 많다. 「식물 변화」, 「풍(風)」, 「기식(氣息) 1, 2」, 「원소」 등은 과학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담고 있고, 사용되는 한자 역시 쉽지가 않아서 초등 수준의 학생보다는 어느 정도 한자 해독력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한 초등학교용 교재라기보다는 당대 정부의 가치와 지향을 담은 국민 교육용 교재라 할 수 있다.

『국민소학독본』에서 두드러지게 목격되는 것은 당대 정부가 육성하고자 했던 국민의 상(像)이다. 고종의 ‘교육입국조서’에서 언급된 “국가를 망하게 하는 것도 국민이요, 국가를 지키는 것도 국민이며, 국가의 정치제도를 바로잡는 것도 국민이다.”라는 취지를 구체적으로 반영한 듯이, 교재 곳곳에는 정부가 요구하는 국민의 모습이 제시된다.

『국민소학독본』에는 또한 민족사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가 곳곳에서 표현되어 있다. 「대조선국」에서는, 우리 대조선은 아시아의 한 왕국이고, 토지는 비옥하고 물산은 풍족하다는 것, 그래서 오늘날 세계 만국과 수호 통상을 맺어 부강을 다투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세종대왕 기사」에서는 세종대왕의 업적이 상세하게 나열된다. 「을지문덕」에서는 을지문덕이 작은 나라의 장수에 지나지 않으나 뛰어난 지혜와 용맹으로 중국의 백만 대군을 물리쳤다는 사실이 소개된다. 민족주의적 자각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중국 중심의 화이관이 부정되고 점차 자주 국가라는 의식이 분명해진 증거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의 단원들을 통해서 『국민소학독본』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민족주의적 자각과 함께 문명개화의 열망을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자를 피하고 국한혼용체를 사용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했고 그것을 통해 국민을 계몽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근대 ‘국어’교과서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다.

결국, 『국민소학독본』은 조선에서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대 전환기에 본격적인 근대 교과서, 특히 국어과 교과서의 탄생을 알리는 매체로 민족주의의 산물이자 응결체였다는 점, 아울러 서구와 일제라는 강국에 둘려 싸여 갈등하는 당대 정부의 고뇌와 지향을 집약된 형태로 보여주는 문화사적 사료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