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시작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철수,

바로 안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 소설은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돌아보면서 안철수와 그의 어린 시절부터 단짝으로 지내던 신부님을 통해 그 속에 부재하는 존재를 이야기하고 있다. 역사는 흐르고 있지만 언제나 우리는 있어야 할 무언가를 갈망하며 누군가에게 소통의 목소리를 보낸다. 그러나 작은 목소리들은 거대한 하나의 외침에 묻혀 묵살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아프리카 봉사활동 중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나 자신의 목숨을 나눔으로 내어놓은 짝꿍 신부님으로 대변되는, 소통에 목말라하는 백성들. 하지만 소통의 시작이 나눔이라는 기본 원리도 모르는 채 입으로만 소통을 외치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이 소설에서 짝꿍신부님의 입을 통해 백성들이 그 답을 해준다.

 

‘얘는 그냥 철수가 아니라 안철수다.

그렇다고 철수가 아니라는 안 철수가 아니라 성이 안 씨인 안철수다.’

우리의 역사는 진실을 은폐한 채 자리 잡고 있는 옳지 못한 권력에 희생되고 있다. 정신적으로 우뚝 설 지도자들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인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철수가 아니라는 ‘안 철수’가 아닌, 성이 안 씨인, 아름다운 나눔으로 소통하는 ‘안철수’를 보는 눈이 절실하다.

‘철수야 이리와 바둑이하고 놀자.’

영희가 철수를 부르는 거지. 그때 짓궂은 친구들이 자네를 놀려 댔지.

‘영희는 어디에 있으며 바둑이는 어디에 있냐?’

나는 그때 자네 대신 이렇게 대답하곤 했지.

‘얘는 그냥 철수가 아니라 안철수다. 그렇다고 철수가 아니라는 안 철수가 아니라 성이 안 씨인 안철수다.’

바로 그거네. 자네가 철수는 철수되 성이 안 씨인 안철수가 될 수 있으면 그 길을 택해도 정말 잘할 거야. 물론 성이 안 씨인 철수가 될 자신이 있으면서도 그 길을 가지 않는다면, 글쎄? 용기가 부족하다고 할까?

그러나 성이 안 씨인 안철수가 아니라, 철수가 아니라는 안 철수가 된다면 자네 역시 지금까지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하나도 다를 게 없겠지.

가장 평범한 백성들과 가장 친근한 철수가 되면 무엇이 두렵겠나?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는 그 순간 철수가 아닌 안 철수가 되어 내가 언제 철수였냐고 한다면 그때는 역사가 다시 심판하자고 할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