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속에서 각자 따로 숨을 쉬던 그 시기, 그리하여 내 입 안에서 들숨과 날숨이 섞여버리던 그 시기, 
채우고 싶었던 것은 오직 마음의 허기였기에 묵과 떡과 핫바와 꽃 중에서 꽃을 골랐노라고 그는 썼다. 
영락없다. 그는 순정한 시인이다.”
-정재찬(≪시를 잊은 그대에게≫ 저자 추천사 중)
   


2020년 ≪형성 1980≫을 펴낸 박주초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서 25년간 쓴 습작을 통해 인간적인 순수함을 보여주었다면, 시인은 이제 내면의 세상에서 눈을 돌려 바깥을 향한 문장을 뱉는다. 삶을 더욱 따뜻하게 이야기하겠노라 다짐했지만 ‘코로나19’라는 예기치 못한 장벽을 만난다. 하지만 좌절하거나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병든 세상 속으로 가까이 다가가 솔직하고 생생한 시선으로 시를 써 내려갔다. ≪역병≫은 시와 함께 감염된 지난날의 기록들이다.
   
추천사를 쓴 정재찬 작가는 “분노조차 허망한 이 우울의 시대, 그러기에 그는 위트라는 소금에 슬픔을 더한다”라고 말했다. 무심하게 뱉은 듯 보이지만 섬세한 손길로 다듬어진 박주초의 글에는 특유의 재치와 위트가 묻어난다. “코로나 이후 우리는 네거티브를 반기며 산다”(<긍정의 배신>)라거나 “통행은 가능한데 통함은 불가능한”(<통금>)이라는 구절은 웃음을 놓지 않으면서도 날카로운 풍자를 곁들이는 뛰어난 감각을 보여준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이번 시집은 ‘역병’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단 코로나19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신체를 장악한 바이러스를 지칭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울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마음을 타고 번진 무언가를 가리키기도 한다. 온 세상이 지독한 무력감에 물들었을 때도 박주초는 성실함을 무기 삼아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예리하게 쓴 시를 꺼내 보인다. ≪역병≫은 잠시나마 우울의 늪에서 벗어나게 하는 또 다른 치료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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