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산문 3부작이라 호명할 수 있다. 더 멀게는 저자의 산문집 [설렘]과 인연을 맺는 책이다. 저자가 공들이는 산문은 시에 관한 파편적인 생각들을 모아보는 문장연습 같은 것이다. 앞서 출간된 [시인의 잡담]이 시에 관한 점적(點的)인 생각이라면 이 책은 점을 감싸는 면적(面的)인 책이다. 다르게 말해 [시인의 잡담]이 시의 혼(魂)을 두고 쓴 책이라면 이번 산문집 [시만 모르는 것]은 시의 백(魄)을 서술한 책이 된다. 두 권의 산문집은 서로의 내면을 투영하는 책이다.

저자는 시가 망했다는 지론을 여지없이 견지한다.

시를 둘러싼 영업적 메커니즘의 지속과 상관없이 시는 국가의 요양보호 없이는 지속가능이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 시인의 줄기 찬 생각이다. 시가 망했다고 떠들면서 시를 옹호하고 있는 시인의 자가당착은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시를 쓰게 된다는 불가피한 하나의 역설을 제시한다. 시가 아니고는 자신의 증상을 달랠 수 없는 자들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들이 시를 쓰고 시라는 제도를 유지시킨다는 생각이 산문집 [시만 모르는 것]을 선회하는 메시지이다.

시인은 책 머리말에서 이렇게 쓴다.

이 책은 시를 위해 쓰여졌다.

나의 시를 위해 쓰여진 책이라는 말이 더 정직하다. 내가 나를 모르고 살듯이, 대충 안다고 치고 세상을 살아가듯이 시에는 시라고 할 만한 무엇이 없는 것 같다. 헛방망이를 휘두르고 다음 공을 기다리는 타자의 심정도 짐작이 간다. 이것이 내가 아는 돌이킬 수 없는 시의 핵심 사안이다. 도무지 무어라고 말할 게 없는 무엇. 시도 모르는 그것. 그러나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그 오리무중(이 말은 또 왜 이리 좋은가)을 시라고 부르고, 시라고 쓰고, 시라고 읽으며 시나브로 살아간다.

등단 32년, 시집 여덟 권을 낸 시인은 산문을 통해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시의 몸통을 빠져나가고자 시를 쓴다. 그러나 그 작업은 가능하지 않다. 언제나 불가능하다. 시를 쓰면 쓸수록 시와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시와 멀어지는 안타까움에 대한 문자적 고백이 산문의 행간을 뒤흔든다. 의미는 어떤 것도 의미해내지 못한다는 절망 앞에 직면한 시인의 문자적 고투가 눈에 띄는 산문집이다.